'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된 건 우연히 본 유튜브의 한 장면 때문이다.
김부장은 직속 상무가 사는 강남의 한 신축 아파트에 가게 된다. 단지 내 화려한 조형물과 정원을 보며 놀라는 그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 내 경쟁 상대이자 후배인 도부장이 상무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장은 속으로 '제발 전세여라!'를 외친다. 도부장이 설마 이렇게 비싼 아파트를 샀을 거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급히 포털 부동산을 검색해 전세가격을 확인한 김부장은 다시 좌절했다. 김부장의 아파트 매매가보다 훨씬 비싼 68억원. 심지어 도부장이 상무와 나누는 대화에서 전세도 아닌 매매로 아파트를 보유했고 현재는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며 김부장은 급격히 우울해진다.
김부장은 2014년 방영한 '미생'의 최신판으로 불리는 오피스 드라마인 동시에 현대사회 부동산의 구조 문제와 에피소드를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김부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의 결단으로 아파트를 샀다가 몇 배가 오른 상황, 그럼에도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동료에게 느끼는 패배감, 자신보다 공부도 못했던 동창이 건물주가 되어 월세 3000만원을 받는 것을 알고 당황하는 모습, 그리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몰려드는 50대 주부들. 해당 장면들은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현실 고증”이라며 큰 호응을 얻어냈다.

40대 낀 세대이자 회사에서 김부장인 나는 부동산에 관한 비애가 있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우리는 운 좋게 신혼집을 매수할 수 있었지만, 출퇴근이 힘들어서 2년을 채 못살고 이사해야 했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매일 왕복 두 시간 이상을 만원 지하철로 다녔다.
서울 도심에선 집을 살 수 있는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셋집을 찾았다. 그나마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보유 자금에 맞춰 구할 수 있는 집은 오래돼 낡은 빌라거나 신축이지만 문제가 있는 빌라였다.
여기서 문제란 하자나 불법 증축이었다. 처음에는 위치나 건물 상태가 좋은 편인데도 시세 대비 전세금이 싼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곧 동네 골목마다 붙은 ‘불법 건축물 철거하라!’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불법 건축물에 입주 계약이 도덕적 해이라는 양심의 가책보단, 매일 출퇴근하며 어린 아이 두 명을 좋은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처음 본 집은 신축 빌라의 옥상 층에 불법 증축한 집이었다. 중간부터 계단 시공이 잘못돼서 천장이 낮았고 어른은 허리를 펴고 오를 수가 없었다. 몸을 45도 정도 구부려서 난간을 붙잡아야 겨우 오를 수가 있었다. 2년이 아니라 단 하루만 이런 집에 살아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서 눈물이 날뻔했다.

더 충격을 받은 사건은 다음에 일어났다. 근린생활시설(상가)을 불법 용도변경한 신축 빌라인데 거실, 방도 넓고 주방과 욕실은 물론 야외테라스도 있어서 동물들을 키우는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우리가 계약 의사를 보이자 비로소 사실을 말했다. 이 전세계약은 불법이고 살면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당부 사항이 있다고.
“구청에서 단속하러 올 때가 있습니다. 미리 연락 드릴 테니 집을 비우거나 불을 끄고 사람이 안 사는 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법 계약이기 때문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해선 안 되는 계약이었지만 당시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진 돈 안에서 완벽한 조건의 집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상태고 무엇보다 남편도 아이도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구한 건 계약 직전 집주인의 폭언이었다. 어렵게 계약을 결심하고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전세자금대출이 안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불법 계약이므로 전세권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것이 안되는 건 당연했다. 중개인의 폰 음량이 커서 임대인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울렸다.
“근생은 대출 안된다고 말했잖아. 2억도 없는 사람들이 전셋집을 구한다고 난리야? 거지 같네. 정말!”
졸지에 거지가 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기 너머 날카로운 음성을 듣는 순간, 어차피 계약은 못하게 됐지만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미래의 아이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부모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개인은 미안해 했지만 구청에 가 불법 건축물들을 신고했다.

"모 부처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고발합니다." 전셋집 사건이 있은 후 몇 주 만에 이메일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택시비가 왕복 6만 원 넘게 나오는 거리여서 약속 전부터 약간은 짜증이 난 상태였다.
제보자 A는 나보다 나이가 아홉 살 어린 여자였다. 큰아이가 내 막내와 동갑이고 뱃속에 14주 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도 부족할 시간에 젊은 엄마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소송에 연루된 것일까.
A는 2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됐다. 무주택자 신혼부부에 어린 자녀가 있어서 당첨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법적 전매 제한 기한이 해제되기 전 A 부부는 분양권을 팔았다. 불법 전매를 한 것이다. 프리미엄을 1000만 원이나 받았고 6개월 새 분양권은 5억 원이 올랐다.
A는 이성을 잃었다. 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분양권을 5000만 원도 아닌 1000만 원만 받고 팔았으니 후회했을 것이다. 5억 원이면 젊은 부부가 몇 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란 말인가. 상대에게 계약 파기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매수인은 도리어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부처 중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기관의 고위공무원이었다.
정부가 고위공무원의 주택 투기를 금지한 시국에 불법 전매를 했다는 사실이 A에게 약점으로 붙잡혔다. A는 공무원이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전매했다는 투서를 작성해 정부 메일로 뿌렸다. 끝내 그는 내부 감찰을 받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불법 전매의 매수인이 아닌 매도인만 처벌한다. 매수인은 전매 제한 기한을 인지하기가 어렵고 내 집 마련의 선량한 목적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A는 불법 거래라는 사실을 증거로 남기지 않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계약금도 송금 아닌 현금으로 받았다. 심지어 법정에선 현금으로 받아낸 계약금마저 받은 적이 없다고 변호사와 말을 맞춰 놓았다.
불법 전매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소송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고위공무원이 불법 전매를 하고도 매도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 어느 하나 코미디가 아닌 부분이 없었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위험보다 5억 원에 눈이 먼 A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어요. 기사를 제보한 이유는 제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제 가족의 소중한 첫 집을 비리 공무원에게 팔고 싶진 않아요. 그건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이잖아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불편해도 성실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면서 많은 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부모의 책임은 무엇임을 10년이 지난 지금 A는 깨달았을까.

노향
경제지 19년차 기자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된 건 우연히 본 유튜브의 한 장면 때문이다.
김부장은 직속 상무가 사는 강남의 한 신축 아파트에 가게 된다. 단지 내 화려한 조형물과 정원을 보며 놀라는 그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 내 경쟁 상대이자 후배인 도부장이 상무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장은 속으로 '제발 전세여라!'를 외친다. 도부장이 설마 이렇게 비싼 아파트를 샀을 거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급히 포털 부동산을 검색해 전세가격을 확인한 김부장은 다시 좌절했다. 김부장의 아파트 매매가보다 훨씬 비싼 68억원. 심지어 도부장이 상무와 나누는 대화에서 전세도 아닌 매매로 아파트를 보유했고 현재는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며 김부장은 급격히 우울해진다.
김부장은 2014년 방영한 '미생'의 최신판으로 불리는 오피스 드라마인 동시에 현대사회 부동산의 구조 문제와 에피소드를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김부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의 결단으로 아파트를 샀다가 몇 배가 오른 상황, 그럼에도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동료에게 느끼는 패배감, 자신보다 공부도 못했던 동창이 건물주가 되어 월세 3000만원을 받는 것을 알고 당황하는 모습, 그리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몰려드는 50대 주부들. 해당 장면들은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현실 고증”이라며 큰 호응을 얻어냈다.
40대 낀 세대이자 회사에서 김부장인 나는 부동산에 관한 비애가 있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우리는 운 좋게 신혼집을 매수할 수 있었지만, 출퇴근이 힘들어서 2년을 채 못살고 이사해야 했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매일 왕복 두 시간 이상을 만원 지하철로 다녔다.
서울 도심에선 집을 살 수 있는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셋집을 찾았다. 그나마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보유 자금에 맞춰 구할 수 있는 집은 오래돼 낡은 빌라거나 신축이지만 문제가 있는 빌라였다.
여기서 문제란 하자나 불법 증축이었다. 처음에는 위치나 건물 상태가 좋은 편인데도 시세 대비 전세금이 싼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곧 동네 골목마다 붙은 ‘불법 건축물 철거하라!’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불법 건축물에 입주 계약이 도덕적 해이라는 양심의 가책보단, 매일 출퇴근하며 어린 아이 두 명을 좋은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처음 본 집은 신축 빌라의 옥상 층에 불법 증축한 집이었다. 중간부터 계단 시공이 잘못돼서 천장이 낮았고 어른은 허리를 펴고 오를 수가 없었다. 몸을 45도 정도 구부려서 난간을 붙잡아야 겨우 오를 수가 있었다. 2년이 아니라 단 하루만 이런 집에 살아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서 눈물이 날뻔했다.
더 충격을 받은 사건은 다음에 일어났다. 근린생활시설(상가)을 불법 용도변경한 신축 빌라인데 거실, 방도 넓고 주방과 욕실은 물론 야외테라스도 있어서 동물들을 키우는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우리가 계약 의사를 보이자 비로소 사실을 말했다. 이 전세계약은 불법이고 살면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당부 사항이 있다고.
“구청에서 단속하러 올 때가 있습니다. 미리 연락 드릴 테니 집을 비우거나 불을 끄고 사람이 안 사는 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법 계약이기 때문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해선 안 되는 계약이었지만 당시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진 돈 안에서 완벽한 조건의 집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상태고 무엇보다 남편도 아이도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구한 건 계약 직전 집주인의 폭언이었다. 어렵게 계약을 결심하고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전세자금대출이 안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불법 계약이므로 전세권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것이 안되는 건 당연했다. 중개인의 폰 음량이 커서 임대인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울렸다.
“근생은 대출 안된다고 말했잖아. 2억도 없는 사람들이 전셋집을 구한다고 난리야? 거지 같네. 정말!”
졸지에 거지가 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기 너머 날카로운 음성을 듣는 순간, 어차피 계약은 못하게 됐지만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미래의 아이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부모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개인은 미안해 했지만 구청에 가 불법 건축물들을 신고했다.
"모 부처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고발합니다." 전셋집 사건이 있은 후 몇 주 만에 이메일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택시비가 왕복 6만 원 넘게 나오는 거리여서 약속 전부터 약간은 짜증이 난 상태였다.
제보자 A는 나보다 나이가 아홉 살 어린 여자였다. 큰아이가 내 막내와 동갑이고 뱃속에 14주 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도 부족할 시간에 젊은 엄마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소송에 연루된 것일까.
A는 2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됐다. 무주택자 신혼부부에 어린 자녀가 있어서 당첨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법적 전매 제한 기한이 해제되기 전 A 부부는 분양권을 팔았다. 불법 전매를 한 것이다. 프리미엄을 1000만 원이나 받았고 6개월 새 분양권은 5억 원이 올랐다.
A는 이성을 잃었다. 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분양권을 5000만 원도 아닌 1000만 원만 받고 팔았으니 후회했을 것이다. 5억 원이면 젊은 부부가 몇 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란 말인가. 상대에게 계약 파기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매수인은 도리어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부처 중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기관의 고위공무원이었다.
정부가 고위공무원의 주택 투기를 금지한 시국에 불법 전매를 했다는 사실이 A에게 약점으로 붙잡혔다. A는 공무원이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전매했다는 투서를 작성해 정부 메일로 뿌렸다. 끝내 그는 내부 감찰을 받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불법 전매의 매수인이 아닌 매도인만 처벌한다. 매수인은 전매 제한 기한을 인지하기가 어렵고 내 집 마련의 선량한 목적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A는 불법 거래라는 사실을 증거로 남기지 않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계약금도 송금 아닌 현금으로 받았다. 심지어 법정에선 현금으로 받아낸 계약금마저 받은 적이 없다고 변호사와 말을 맞춰 놓았다.
불법 전매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소송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고위공무원이 불법 전매를 하고도 매도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 어느 하나 코미디가 아닌 부분이 없었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위험보다 5억 원에 눈이 먼 A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어요. 기사를 제보한 이유는 제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제 가족의 소중한 첫 집을 비리 공무원에게 팔고 싶진 않아요. 그건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이잖아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불편해도 성실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면서 많은 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부모의 책임은 무엇임을 10년이 지난 지금 A는 깨달았을까.
노향
경제지 19년차 기자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