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행복한 엄마가 성장하는 V-Life> “엄마의 멈춘 시간도 자산이 될 수 있을까”

유진

멈칫한 순간조차 자산이 되는 시간. 10년 차 ‘아둘맘’이 흔들림 없이 ‘나’를 지켜온 V를 말한다.


멈춤은 또 다른 출발

나는 한때 국내 대표 문화예술기관에서 공연을 기획·홍보하며 관객과 예술을 잇는 일을 사랑했다. 좋아하던 취미가 일이 되었고, 야근조차 즐겁게 받아들일 만큼 열정이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일에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복직을 앞둔 순간, 오랜 고민 끝에 퇴직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경력이 아깝지 않냐, 신의 직장을 왜 버리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내 행복과 신념을 지켰다. 때로는 허전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내 삶을 새롭게 설계할 기회였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었다. 나를 향한 또 다른 출발점이자, 인생의 속도를 늦추고 가족과 나의 삶을 기획하는 여정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V’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V-Life’의 V는 Vision·Value·View다. 앞으로의 길을 그려가는 비전, 나를 지탱하는 가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이 세 가지가 모여 나는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퇴직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영원한 경력단절이 아니다. 쌓아 온 시간은 단지 육아의 기록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자산이 될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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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자란다

육아는 성취보다 책임을 먼저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즉각적인 피드백도 없다. 초반에는 흔들리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10년 차 엄마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나를 단단히 다져준 성장의 과정이었다. 또 다른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려는 마음이 아이와 나를 자라게 해 주었다.

나는 육퇴 후 ‘나만의 10분’을 꼭 지키려 했다. 온전히 아이에게 쏟은 시간을 내려놓고 내면에 집중하는 짧은 시간이다. 책을 펼치고, 일기를 쓰고, 궁금했던 강의를 들었다. 때로는 남편과 고민 상담도 했고, 음악이나 맥주, 와인으로 작은 쉼을 얻기도 했다. ‘나는 엄마로, 그리고 나로 잘하고 있는 걸까?’ 반문하던 짧은 시간들이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주었다.

아이에게 마음을 쏟다 보면 ‘나’는 쉽게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며 생겨난 작은 틈은 나를 다시 만나게 했다. 커피, 필라테스, 전시와 공연, 책과 글쓰기, 친구와의 웃음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왔다. 그 모습은 아이에게도 메시지가 된다. “엄마도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결국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도 자란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라며,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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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다시, 새롭게 연결되다

아이의 질문은 늘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 경제, 과학, 미래, 교육, 환경 문제 같은 낯선 주제들. 아이와 나눈 대화는 단순한 육아의 순간을 넘어, 내 시야와 지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 경험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교육을 고민할 때마다 창의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지식은 변하지만, 자기만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풀어내는 힘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섯 살무렵부터 이어진 질문들을 기록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호기심 노트’를 만들었다. 내게도 생경했던 아이의 작은 질문들이 배움의 문을 열어주었다.

창의력은 나침반이고, 현실 감각은 노와 같다. 칼 비테가 말했듯, “책상 위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운 것은 현실에서 쓰일 때 힘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 신문을 함께 읽기로 했다. 오늘 세상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환경과 기술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이에게 알려주려던 대화는 어느새 세상을 향한 더듬이가 되었고, 나의 시선이 되었다. 책과 신문만이 답은 아니다. 숲 속 벌레와 갯벌의 생물, 바닷가의 파도 같은 자연의 감성, 그리고 바깥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경험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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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항해를 지켜보며

퇴직 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어느새 메타버스, 블록체인, 인공지능이 일상이 되었다. 로봇이 청소를 하고 커피와 음식을 만들며, 주차와 택배를 담당한다. 메타버스 콘서트와 전시가 열리고 NFT로 티켓이 판매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교육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곧 10대가 될 첫째 아이를 보며, ‘자기만의 생각을 지켜내는 힘’을 가지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성적이나 레벨 보다는 ‘너희는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가 더 궁금한 이유다.

아이를 작은 배에 비유하는 말에 공감한다. 경험 속에서 얻은 배움이 돛이라면, 나는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지나치게 간섭하지도, 무심히 외면하지도 않는 바람말이다.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물살을 헤치며 나아갈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혼돈의 육아 속에서도 분명한 관점을 세우면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흔들리고 다잡고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지금까지 그러했듯 나와 아이들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다시 쓰는 ‘커리어’, 나만의 길

‘현모양처’라는 말은 이제 공감을 얻기 어렵다. 좋은 엄마와 아내의 모습은 여전히 가치 있지만, 희생만을 요구하는 기준은 달라져야 한다. 엄마라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복한 ‘나’를 성장시켜 나가는 주체적 여성. 그것이 오늘날 엄마들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커리어는 직장이나 직함만이 아니다.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내가 주체적으로 성장해가는 여정이 바로 커리어다. 어떤 엄마는 일터에서, 어떤 엄마는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펼친다. 중요한 건 ‘나’를 잃지 않고 채워가는 일이다.

10년 차 엄마로서 나는 여전히 가족 안에서 목표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꿈을 꾼다.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며, 나만의 커리어를 열어가고 있다. 커리어와 나, 가족 사이에서 고민하는 엄마들 모두가 나만의 V-life를 지켜가길 바라며, 각자의 곁에 늘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이 글을 나누는 순간 또한, 내가 걸어온 시간이 준 선물이자 또 하나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함께할 모든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다. “Moms with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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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yj_eueu) 

문화예술기관에 몸담았다. 

일을 사랑하던 열정녀에서 10년 차 엄마로, 

새로운 나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