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뉴욕 정착기 — 우리의 새 보금자리, 롱아일랜드 시티

유아영


뉴욕 도착

2022년 8월 3일, 뉴욕 JFK에 밤비행기로 도착했다.

뉴저지에 살고 있던 동생 부부가 아니었으면 뉴욕행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까만 밤하늘을 달리고 달려 동생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긴장이 확 풀렸다.

‘일단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오기만 했을 뿐,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8월 말 개강일 전까지 당장 집도 구해야 했고 학교 갈 준비도 해야 했다. 그러나 일단 일주일은 뉴욕의 학교 주변을 여유 있게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집을 찾아보자 했었다.

한 이틀쯤 돌아다녔을까?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우리 발목을 잡았다. 한국에서도 잘 버티던 우리 세 가족은 뉴욕에서 코로나에 무너졌고, 본의 아니게 동생 부부까지 고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녹록지 않은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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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집 구하기, 아발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는 브루클린에 본 캠퍼스가 있다. 그래서 당연히 브루클린에서 집을 찾고 있었고, 현지 중개업체를 통해 아파트 계약을 거의 다 마칠 참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게 아까웠다.

상황은 이렇다. 코로나가 극심해지면서 뉴욕에 머무르던 많은 외지인들이 월세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 세입자의 신원을 보증할 개런터가 있어야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는 혹여 세입자가 집세를 내지 않고 도망가더라도 이를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자산을 증빙해야 했다. 그 금액이 상당했고, 주변에 자산 증빙을 부탁하기에는 실례스러웠다. 그래서 개런터 보험을 드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때 마침 지인의 추천으로 미국의 대형 아파트 회사 ‘아발론(Avalon)’을 알게 되었다. 거기는 개런터 없이 우리의 신원 증빙만으로도 아파트를 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아발론 사이트에서 여러 곳을 찾다가 롱아일랜드 시티의 아발론 리버뷰에 우리의 단란한 거처를 마련했다.



아파트를 온라인 쇼핑하듯 마무리하다니!

한국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몇 번이고 발품을 팔고 부동산에 묻고 또 묻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집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할 일이었고, 실제로 아파트 사이트가 꽤 잘 되어 있기도 했다. 입주할 날짜, 거주 기간, 원하는 평수, 위치 정보를 입력하면 결과값이 자동으로 추려져 내가 원하는 아파트를 찾기 용이했다. 내부 구조나 외부 전경까지 360도 뷰로 볼 수 있었고, 가구 배치를 위한 공간 실측 사이즈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이나 전화로 얼마든지 문의할 수 있었고, 비교적 빠른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생활을 이만큼 해본 지금 돌이켜보면 ‘아, 아발론은 훌륭한 속도로 일을 처리해주는 회사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이는 나의 미국생활에서의 첫 ‘성공경험’ 이 되었다. 무엇이든 성공경험이 중요하지 않던가! 아파트 계약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고 오피스와 소통한 전 과정이, 앞으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결국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예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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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 시티,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네

뉴욕은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퀸즈, 그리고 스타튼아일랜드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우리는 퀸즈의 롱아일랜드 시티, 이스트강 앞에 살았다.

롱아일랜드 시티는 퀸즈에서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가장 가깝게 맞닿은 곳이다. 지하철 7라인을 타고 한 정거장만 건너면 그랜드 센트럴이었고, 두 정거장을 가면 우리가 애정하는 브라이언트 파크가 있는 5번가였다. 학교가 있는 브루클린은 주로 G라인을 타고 다녔고, 때때로 강을 건너는 페리를 애용했다. 월세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쌌다. 우리는 원베드룸을 구했다. 한국에서 지내던 집에 비하면 작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스튜디오가 아닌 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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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햇볕에 반짝거리는 강물의 윤슬을 눈에 담는 호사를 누렸고, 밤에는 강 건너 맨해튼의 야경을 내 것인 양 듬뿍 누렸다. 매일 다르게 연출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형형색색 조명쇼를 벗 삼은 화려한 곳. 언제나 시끌벅적한 맨해튼은 때로는 이 정도 거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가 일상의 공간이 되었어도, 언젠가 공부를 마친 뒤 서울로 돌아갈 나에게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오랜 여행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매력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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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반려견에게 다정한 뉴욕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인상도 참 좋았다. 이곳에는 보통 맨해튼에 출퇴근하는 우리 같은 외지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았다. 그래서 동네 자체가 아이 친화적이었다. 집 앞 강변에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든 맘껏 뛸 수 있는 갠트리 파크(Gantry Park)가 있었고, 아파트의 실내 놀이터도 잘 갖춰져 있었다. 뉴욕에서 밤 산책이 비교적 안전한 곳이자, 아이와 강아지가 지내기에 굉장히 좋은 동네였다. 그래서 반려견 산책을 시키거나 아이를 돌보는 워커들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한 아이의 엄마로서, 엄마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독려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럽기까지 했다. 물론 부모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애프터스쿨을 보내는 것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케어기버(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는 일이 아주 많았고, 그들은 거의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 없었다. 아마 그건 뉴욕의 높은 임금이 가능케 하는 일이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빠듯하다고 이곳 엄마들은 말했다.

또 하나, 다른 사람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낯섦이 있는 나에게 뉴욕은 꼭 커다란 공동육아의 장처럼 느껴졌다. 하교시간이 되면, 유모차를 끈 엄마들과 케어기버들이 공원이나 아파트 1층 놀이터에 나와 다 같이 아이들을 놀렸다. 그런 모습이 꼭 우리 어릴 적, 놀이터에서 엄마가 목청껏 ‘밥 먹어라!’ 부를 때까지 놀던 때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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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엄마의 복직 문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케어기버라는 직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안정된 문화, 이를 꾸준히 유지할 만한 임금이 보장된 사회가 주는 ‘육아의 안정감’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했다. 그 결과값은 아이가 많은 사회로 충분히 입증 되었으니 말이다. 보통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세상 처음 보는—세 아이를 한 번에 태울 수 있는—트랜스포머급 유모차도 많이 보였다. 아이를 보면 항상 말을 거는 분위기, 스몰 토크 문화가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눈인사로 시작해 온기가 오가는 작은 대화로 서로의 장벽을 허무는 분위기는 언제나 좋았다. 어디든 엘리베이터는 새로운 만남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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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영

미술로 삶을 기록하는 작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여성으로서의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잇고 짓습니다